불안감에서 일찍 일어나서 언제나처럼 TOEIC공부를 조금씩 하고 씻고 밥을 먹으러 가지.다른 호텔과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는 뷔페.그저 그래.아직 예약된 여행사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다.
어쨌든 간단한 일정에 적힌 대로 호텔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곧 승합차 1대가 호텔 앞에 와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픽업 차량이었다.
기뻤어.일정대로 갈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한다.
친구의 말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여행은 또 이런 불안감도 있어야 제 맛이다.
가이드는 현지인에 보이는 존슨과는 사람이었다.
메일 코리아 호텔 앞에서 우리가 승합차에 탔을 때 두 여성이 있었지만 내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 때에 되돌아 오는 말도 역시”안녕하세요”였다.
기뻤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주는 말은 없었다.
승합차가 잠시 가서 멈추면 버스로 갈아타라고 해서 큰 관광 버스에 탔을 때, 가이드 존슨이 올라왔다.
버스 안에는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탔지만 한국인은 우리를 포함 4명에 보였다.
불안감에 일찍 일어나서 평소처럼 토익공부를 조금 하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간다.
다른 호텔과 마찬가지로 조식은 뷔페. 그저 그래. 아직 예약된 여행사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무튼 간단한 일정에 적힌 대로 호텔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곧 승합차 한 대가 호텔 앞에 와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픽업 차량이었다.
기뻤어.일정대로 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친구 말대로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여행은 또 이런 불안감도 있어야 제맛이긴 하다.
가이드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존슨이라는 사람이었다.
멜리아 호텔 앞에서 우리가 승합차를 탔을 때 두 여자가 있었는데, 내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을 때 돌아오는 말 역시 “안녕하세요”였다.
기뻤지만 그냥 거기까지였어. 더 이상 줄 말이 없었다.
승합차가 잠시 갔다가 멈추자 버스로 갈아타라며 큰 관광버스를 탔을 때 가이드 존슨이 올라왔다.
버스 안에는 15명 정도의 사람들이 탔는데 한국인은 우리를 포함해 4명으로 보였다.
나는 달리는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즐기는 타입이야. 하지만 이 버스는 유리창이 더러워서 사진을 찍으면 그도 더러웠다.
존슨이 이러쿵저러쿵 버스 안에서 많이 얘기했지만 버스 안 승객은 중국인 또는 우롭인으로 보이는 백인 수 명과 한국인은 우리를 비롯해 서너 명 등 짬뽕된 인종으로 구성돼 있었다.
존슨의 말을 듣거나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존슨도 조금은 진정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일정이 그랬는지 말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버리자 조용해졌고, 모두 눈을 감고 잠든 것 같았다.
차창에는 줄곧 야자수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었으나 자연적인 것 같지 않고 옛날에 우리가 소나무나 잡목을 산판이라는 이름으로 베어낸 뒤 잣나무를 집중적으로 조림한 것처럼 야자수를 심은 것 같았다.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 도중 휴게소에 들렀는데, 나는 이런 장면에 눈이 감기고 말았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아이들 아버지가 대답도 잘해주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으라고 한다.
가족 중 형과 아버지 사이에 앉은 이 귀여운 아가씨가 유일하게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웠다고 한다.
한류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아이 엄마가 정말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고 온 가족이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은 누가 뭘 먹든 또 언제 어디서 봐도 정답이고 행복해 보인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인사 대신 파인애플 몇 조각을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다시 말라카로 향한다.
정말 특이한 것은 고속도로인데 오토바이가 차와 함께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통행료도 같은 비율로 낼까?말라카 시내에 버스가 들어오자 가이드 존슨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이것저것 설명한다.
첫 번째 교회라든가. 존슨은 나름대로 사진 자료 등을 동원해 열심히 설명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들어와서 지은 교회인 것 같고.뭐, 그저 그런 교회 같지만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 유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교회에 단 한 번도 또 단 한 명도 기부한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우리 여행의 안전을 위해 우리 돈으로 1만원을 헌금했다.
동유럽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성당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규모는 그에 비할 바 없지만 나름대로 신성함은 충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세계유산의 도시 말라카 또는 멜라카. 아니면 무라카.강이 독특했다.
강물은 조금 탁해 보였고, 양쪽으로는 그냥 강둑이 아니라 시멘트 구조물로 된 강둑으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것이 일종의 수상도시 같은 느낌이었지만,그것이 일종의 수상도시 같은 느낌이었지만,적색 계통의 건물은 포르투갈과 영국 등 식민지를 경험한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아무리 봐도 인상적인 것은 강이었다.
내가 아직 안 가본 나폴리가 이랬을까.그러니까 이 말라카라는 도시는 우리로 치면 경주 같은 곳인데 왠지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많았어.이 딸, 말하자면 말라카 홍보대사?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 아름답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 딸을 촬영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흔쾌히 OK. 그래서 바로 셀카를 들이대고 한창!
요즘 같은 게 자꾸 눈에 들어오니까요즘 같은 게 자꾸 눈에 들어오니까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에나 있는 차이나타운인 것 같은데요.이 나라 경제는 약 25%의 화교가 전체 60%가 넘는 말레이계 인구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명나라 때 정화의 대원정 시대에 그 정화 장군이 명나라 수군을 이끌고 동남아시아를 넘어 인도와 멀리 아프리카 북단까지 항해하던 그 시대에 정화가 이곳을 지나간 기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족의 전성기라고나 할까. 청나라는 중국 역사이기는 하지만 지배층이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기 때문이다.
말라카 역사유적이 많은 도시라고 했어. 하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강을 따라 산책을 하는 것으로 그날의 여행은 끝나고 다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아쉬웠다.
나 같은 사람은 역시 왕궁에 가야 했다.
말라카- 떠돌이 방랑가객